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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와 정직
손봉호 (서울대교수)


머리말

한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드는 것은 영토의 크기나 풍부한 천연자원이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의 질이다. 그리고 한 민족의 질은 한 시기에 사는 사람들이 노력한다 하여 갑자기 높아지지 않는다. 수준 높은 문화를 가진 역사와 훌륭한 전통이 뒤받침 되어야 하고 그 유산을 충분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좋은 유산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창조적인 인물과 위대한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위대한 역사적 유산은 많은 양의 질 좋은 천연자원보다 더 귀하고, 위대한 선각자들은 석유나 금 같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소중한 민족적 자원이다.

오늘 우리가 도산을 기리는 것은 단순히 그가 위대한 애국자요 훌륭한 민족지도자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한 그가 우리 나라의 독립에 큰 공헌을 했기 때문만도 아니다. 물론 그 공헌들도 위대하지만, 우리가 그를 기념해야 할 훨씬 더 큰 이유는 그가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큰 이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독립운동가요 훌륭한 지도자를 기리므로 앞으로도 그런 인물은 두고두고 추앙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하는 것은 시민의식교육에 큰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위대한 인물들을 전기, 동상, 기념관, 우표, 그리고 이와 같은 학술대회 등을 통하여 기념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도산이 살고 활동했던 시대는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어려운 때였고 그런 상황에서는 가끔 특출한 인물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도산의 위대함을 그렇게만 설명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그 시대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안정을 위해서 나라의 운명에 관심을 쓰지 않았고, 목숨을 바쳐가며 독립운동을 한 애국자들 가운데서도 도산은 특출하였다. 도산은 모든 독립운동가 가운데서 가장 존경받을만한 인물이었고, 오늘 우리를 위하여 그 어느 분보다 더 귀중한 정신적 유산을 남겼다. 그의 애국정신은 철저히 순수하였고, 그 순수함을 그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냈으며, 그것은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는 그 시대의 상황과 우리의 약점을 정확하게 진단하였으며, 그 병을 고치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직도 그 병에서 치유되지 못했기 때문에 도산은 우리에게 더욱 소중한 것이다.

도산이 우리의 선열이며, 이 미국에서도 독립운동과 민족운동을 전개하였으므로 오늘의 이 모임은 그만큼 뜻 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때 도산이 이 땅에서 전개했던 운동은 오늘날에도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이런 모임은 그만큼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

위대한 인물은 좋은 추종자를 낳고, 수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천연자원도 개발해야 유용한 것처럼 도산의 위대함도 우리가 올바로 이해하고 잘 이용해야 우리에게 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도산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깊은 통찰력을 가졌고 범인이 본받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의 신념을 실천에 옮겼다. 그 가운데서도 그가 가장 강조했고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교훈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의 윤리사상이요 특히 정직에 대한 강조라 할 것이다. 이미 많이 논의되었지만 그것은 반복해서 토론하고 강조할 필요가 있다.

2. 도산과 정직

도산은 어느 독립운동가보다 더 진실하고 철저한 애국자였다.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하여,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하여") 주요한 편저, 증보판『安島山全書』, 흥사단 출판부, 1999 (이하에는 『전서』로 약기), 30쪽. 일생을 바쳤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일본을 증오하고 비판하는 감상적 애국자도 아니었고, 물리적인 힘으로 일본과 일본인을 공격하자는 전투적 애국자도 아니었다. 그의 독립운동은 일본을 공격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을 먼저 고치고 힘을 기르자는 자력갱생론자였다.) "우리는 망국의 책임을 일본의게 돌리고 이완용의게 돌리고 양반계급의게 돌리고, 조상의게 돌리고, 유림의게 돌리고, 민족운동자의게 돌린다. 그리고 그 책임 아니 질자는 오직 나 하나뿌인 것 같이 장담한다. 그러나 우리 민족 각원이 힘있는 국민이였을 진댄 일본이 어찌 덤비며 이완용이 어찌 매국조약에 도장을 찍을 수가 있으랴. 그럼으로 우리는 이완용을 책하는 죄로 우리 자신을 죄하여야 한다" (도산안창호선생전집편찬위원회 편,『島山安昌浩全集』(이하에는 『전집』으로 약기)제12권, 島山安昌浩先生紀念事業會, 2000, 134쪽). "만일 너도 한국을 사랑하고 나도 한국을 사랑할 것 같으면 너와 나와 우리가 다 힘을 합하여 한국을 개조하자") 『전서』, 31쪽. 고 주장한 자력주의자였다.) 自力主義란 표현은 朴義洙 교수가 "島山의 人格과 思想" 島山과 힘의 哲學. 怡堂 安秉煜 敎授 停年 退任 紀念. 興士團 아카데미 文集, 흥사단 출판부, 1963. 23쪽에서 사용. 1921년 흥사단 동지들에게 보낸 편지에, "내가 이에 간절히 부탁하는 바는 이것이외다. 여러분은 '힘을 기르소서, 힘을 기르소서.' 이 말씀이외다. 독립이란 본 뜻이 내가 내 힘을 믿고, 내가 내 힘을 의지하여 삶을 이름이요, 이 반대로 남의 힘만 믿고, 남의 힘을 의지하여 사는 것을 노예라 하나니, 만일 우리가 이름으로는 독립운동한다 하고 사실로는 다른 나라들의 관계만 쳐다보고 기다린다면 이는 독립 운동 정신에 크게 모순이 되지 아니합니까 … 독립할 자격이 있는 민족에게는 독립국의 열매가 있고, 노예 될 자격이 있는 민족에게는 망국의 열매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독립할만한 자격이라는 것은 곧 독립할만한 힘이 있음을 이름이외다.") 『전서』, 390쪽. 라고 썼다.

그가 키우려 했던 힘은 주로 정신적인 것이었고, 특히 윤리적인 힘이었다. 물론 도산은 사실을 중요시할 것을 강조했고, 냉정하고 합리적이며 현실적이 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경제적인 힘이나 지식의 힘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어느 것보다 더 중요한 힘은 바로 건전한 인격이었다. "…건전인격이 없고는 개인으로나 민족으로나「힘」있는 자가 되지 못하고 이 「힘」이 없이는 결코 목적하는 바 소원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잃었던 국권을 회복하여 쇠퇴하였던 민족의 운세를 왕성케 한다는 소원은 모든 소원 중에도 큰 소원이기 때문에 이것을 달하기에는 모든 「힘」중에 가장 큰 「힘」을 필요로 하는 것이니, 민족이 가장 큰 「힘」을 발하는 길은 오직 하나, 딴 길 없는 오직 한길, 즉 민족 각 개인이 인격을 건전하게 하는 길이다.") 『전집』제12권, 248쪽.

우리 민족이 약해진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성의 타락 때문이고, 그 가운데도 우리 민족이 허위의 악습에 젖은 것이었다고 진단하였다.) 『전집』제12권, 241쪽. "거즛말, 거즛 행실. 이 두 가지가 우리 민족을 쇠퇴케하고 우리로 망국민의 수치를 받게 한 근본 원인이라고 그는 황연히 깨달았다."라고 이광수는 회상했다.) 『전집』제12권, 241쪽.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라고 탄식한 것) 『전서』, 29쪽. 을 보면 그가 무엇을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약점으로 보았는가를 잘 알 수 있다. 도산의 위대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 민족성에 대한 그의 객관적이고 정확한 반성이었고, 그런 반성에 기초하여 애국운동을 펼친 것이다. "그는 어떤 모양으로 자아혁신의 대업을 성취할까 함에 대하야 민족성분석 즉 자아반성이라는 방법을 취하였다."고 이광수는 지적하였다.) 『전집』제12권, 240-241쪽.

그렇지 않아도 전 민족이 기가 죽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용기를 잃은 상황에서 우리의 아픈 부분을 사정없이 드러내는 것은 보통정도의 확신과 용기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진단하지 않은 채 병을 고치려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부질없는 짓이다. 암이 무서우니까 암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병 치료에 필요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다.

우리의 약점에 대한 그런 이해는 자동적으로 정직운동으로 이어졌다. 독립운동가들 뿐 아니라 우리 나라 역사상 교육자나 종교인들 가운데서도 도산만큼 거짓을 미워하고 정직을 강조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한승인, "민족의 빛 도산 안창호" 『전집』제11권, 744쪽. 도산의 질녀이며 도산이 대전 감옥에서 출감한 후 재수감될 때가지 도산을 모신 안성결 여사가 도산을 회고한 책이름을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도산기념사업회, 한국문화사, 1996.)라고 한 것은 도산이 그에게 준 인상에서 가장 강하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 『전집』제12권, 92쪽.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군부(君父)의 원수는 불공대천(不共戴天)이라 했으니, 내 평생에 죽어도 거짓말을 아니하리라.") 『전서』, 29쪽.

그는 우선 그가 세운 학교 학생들, 흥사단 단원들에게 정직을 특별히 강조하여 가르쳤다. 이광수는 그의 『도산 안창호』에서 "도산의 교육방침은 건전한 인격을 가진 애국심 있는 국민의 양성에 있었다. 도산이 주장하는 건전한 인격이란 무엇인가. 성실로써 중심을 삼았다. 거짓말이 없고, 속이는 행실이 없는 것이었다. 생도의 가장 큰 죄는 거짓말이었고 속이는 일이었다. 이에 대하여서는 추호의 가차도 없었다.") 『전서』, 106쪽. 고 썼다.

도산이 세운 대성학교 생도였던 전영택이 추억하기를 "거짓을 경계하시고 '진실'을 힘써 가르쳤다는 것은 흔히 애석한 모양으로 어떤 학생의 무기 정학처분에 대한 광고를 하셨는데, 그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그 학생이 결석계를 내는데, 자기 도장이 없었던지 남의 도장을 가지고 슬쩍 비벼서 소위 카무플라즈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 말씀이 '이것이 비록 작은 일 같지마는 우리 대성학교의 정신에 어그러진 것이니, 박절하지만 이런 일은 중벌을 할 수밖에 없소. 이런 정신으로 공부한다면 세상 없는 공부를 한 대도 소용없소. 우리 대성학교에 이런 학생이 있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오'") 『전집』제11권, 745쪽. 하고 그 학생을 중징계 했다 한다.

최남선은 《새벽》 창간호에 쓰기를 "그 주장인 '무실 역행'은 눈이나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다 피하고 일을 실제로 하자는 것인데, 이것은 도산 선생의 머리 속에서 창작한 정신이며 표어였다. 선생은 그것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데 있어서 철학적 문구를 쓰지 않고 '거짓말 말자'는 것이라고 단순하고 명쾌하게 말씀하셨다. '거짓말 안 하는 인간' '거짓말 안 하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서』, 127쪽. 고 하여 흥사단의 표어인 무실역행(務實力行)이 무엇을 강조하고자 함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3. 정직의 모범

도덕을 말로 가르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한국의 정치인들 가운데 도덕을 강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나,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말만큼 도덕적이지 않고, 한국의 종교인들 가운데도 자신이 가르치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물론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성경에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혹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17)것이 있고, 영어 속담에도, "Easy to say, hard to do"란 것이 있는 것을 보면 지행합일(知行合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려운 모양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은 도덕적 가르침은 전혀 무력하다. 도산은 그것을 누구보다 더 절실하게 알았던 것 같다. 흥사단 입단을 위한 문답에서 도산은 "우리 민족이 충군, 애국을 하였던가요?"고 묻고 도산이 바라던 대답은 "충군, 애국을 알기는 저마다 알았어도 그것을 행한 사람은 극소수라고 생각하오"였다.) 『전집』제12권, 316쪽.

그래서 그는 말로만 도덕을 가르치고 정직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지도자답게 그의 주장을 실천에 옮기고 가르친 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하였다. 말한 대로 실천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정직이라 할 수 있다. 춘원은 도산에 대해서, "그의 일생의 좌우명은 '성심·성의'의 한 마디로 요약된다. 스스로 행함에 있어서 작은 일에나 큰 일에나 성(誠)을 다할 것을 그는 가르치고 또 몸소 실천하였다. 표리 부동을 배제하고 모략중상을 극도로 경계하였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성심을 주로 하고 허례와 가식을 미워하였다"라고 보고하였다.) 속편 『도산 안창호』,『전서』, 47쪽에서 전재. 그가 내세운 무실역행(務實力行)에서 역행(力行)은 "힘써 행하라"는 말이 아니라 "행하기를 힘쓴다"는 말이라 하였다.) 『전서』, 503쪽.

그가 생면부지의 미국 땅에 도착하였을 때 중국인삼을 한국산으로 속여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한 한국인의 충고를 한 마디로 거절한 사실과,) 『전서』, 78쪽. 23세의 나이로 18세 이상은 허락하지 않는 미국의 소학교에 입학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당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키도 작은 동양인이니 나이를 속이라는 하숙주인의 충고를 끝까지 물리치고 정직하게 나이를 말하였기 때문이었다.) 『전집』제11권, 725쪽.

도산은 정직을 강조한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하여 결과적으로 목숨을 바쳤다고 까지 말할 수 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일이 마침 도산의 한 친지의 자녀 생일이었는데, 그 아이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하여 일본 경찰의 경계가 매우 엄중한 것을 알면서도 그 집에 갔다가 거기서 체포되었고, 본국으로 압송되어 수감되었으며, 결국 감옥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그러나 도산은 그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집』제12권, 417쪽. 그 정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그렇게 중요한 인물의 안전을 모험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도산이 작은 아이 하나에게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하여 얼마나 애썼는가를 잘 반영해 준다.

솔선 수범함으로 도덕을 외친 도산의 모범은 오늘 우리 사회에서 찾기가 매우 어렵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무엇이 옳고 무엇이 나쁜가를 잘 알고 있으나, 스스로 실천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를 지적하는 사람은 무수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사람은 매우 많다. 그러나 그들은 입으로, 글로만 주장할 뿐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교육적 효과가 거의 없다. 행동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주장을 사람들이 따르기는커녕 오히려 그 가르침에 대해서 더 냉소적이 되어버려 오히려 주장하지 않음보다 훨씬 못한 역효과를 가져온다. 우리 사회의 도덕성, 특히 정직성이 이렇게 약해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치인들을 비롯한 소위 사회 지도층과 지당한 말씀을 수없이 나열하는 종교, 교육, 언론계가 자신들이 한 말을 실천에 옮기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직한 힘과 지위는 도덕적 권위가 없고, 따라서 아무도 진정으로 그것에 즐겨 순종하려 하지 않는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커다란 거짓이다. 윤리적으로 훌륭한 내용을 말함으로써 듣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대로 행동할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동시에 자신의 인격과 생각이 그만큼 훌륭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과시한다. 그런데 그 말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 심어 놓은 자신의 인상을 거짓 것으로 만들고 따라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모든 거짓이 다 나쁘지만, 말만 번지르르 한 위선은 매우 가증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대부분의 지행불일치는 의도적이기보다는 자기를 객관화할 수 있는 반성능력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얼마 전에 이뤄진 한 조사에 의하면, 과소비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조사대상의 68.8%나 된 반면, 스스로 과소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0%에 불과했다 한다. 거짓의 경우도 비슷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 국민이 정직하지 못하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부정직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윤리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시사가 될 수 있다. 교육자가 솔선 수범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피교육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도 윤리교육의 아주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성숙한 개인과 사회라야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데, 피교육자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교육, 특히 좋은 윤리교육의 핵심적 요소라 할 수 있다.

3. 한국인과 정직성

최근 한국은 지난 6, 7월 월드컵 경기를 성공적으로 치른 뒤 국제적으로 그 위상이 많이 올라갔고, 국내적으로 자긍심이 매우 높아졌다. 축구 경기도 기대이상으로 잘 했지만, 특히 전국민이 질서 정연하게 한 마음으로 응원함으로 역사상 보기 드문 국민통합을 경험했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에서 채택한 국호 "대한민국"이 이번에 처음으로 "우리 나라"로 일상화되고 태극기가 "우리의 국기"로 친밀하게 되었다.

그 동안 경제도 경이롭게 발전하여 세계에서 12위로, 고교졸업생 대학진학률에는 세계 2위, 문맹률에서는 세계 최하를 자랑하게 되었다. 해방전후와 6·25 전쟁 후의 처참한 상황을 고려하면 실로 눈부신 발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열심히 일하고 배우고 이룩하는 데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즉 남과 경쟁해서 이기는 것에는 매우 큰 관심을 기울이고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경쟁이 중요하지 않는 분야, 당장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분야, 혹은 다 같이 이익을 보아야 하는 분야에는 놀랄 정도로 뒤떨어져 있다. 도덕, 질서, 정의 등에서는 여전히 후진국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청렴도는 조사대상 90개국 가운데서 42위, 아세아에서 다섯 번째로 부패한 나라로 세계의 조소를 받고 있다. 질서와 정의가 확립되지 않아 교통사고 사망자는 일본의 10배나 되고, 수많은 사람이 억울함을 당하며, 부패가 만연하여 엄청난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무질서는 경제성장도 방해하고) 홍익대학교 장근호 교수는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한국의 제도개혁과제와 방향 보고서에서 "부정부패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통해 투자 및 정부지출 등의 기존 변수 이외에 부정부패가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비리에 따른 불확실성도 제한적이나마 성장을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나타난다"며 부정부패와 경제성장률의 연관관계를 수치화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에 따르면 2000년도 우리 나라의 국가별 부패지수(CPI)는 전체 조사대상국 90개국 중 48위인데 비해 일본은 23위로 각각 나타났다. 장 교수는 만약 우리의 부패지수가 일본수준으로 줄어진다면 우리 경제성장률이 1.4%∼1.5%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2001년 5월 18일자, 《문화일보》).학문, 교육, 예술, 스포츠 등의 건강한 발전도 지연시키고 있다.

우리 도덕의 후진성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이 정직성과 공정성의 결여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도 진실에 대한 정열이 약하며, 학계에도 표절이 끊어지지 않으며, 예술계에서도 근거 없는 비난이 난무한다. 연고주의가 공정한 평가와 판단을 불가능하게 해서 수많은 약자들을 괴롭힌다. 이 두 가지 결함은 현대 사회에서 치명적이고, 우리 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가장 큰 방해가 되고 있다. 도산의 애끓는 가르침과 그의 솔선수범은 전혀 메아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어느 한국인도 우리가 정직하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즐겨 인정하려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반성하지 않으면 우리의 장, 단점을 알 수 없고, 특히 우리의 약점을 알지 못하면 그것을 고칠 수 없다.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부정직하다고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선진국민이 될 만큼 정직하지는 못하다는 것을 우리가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국인이 정직하지 못하게 된 것이 일제의 탄압과 해방 후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생겨난 악습이라고 주장한다.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부정직은 그 이전에도 심각했다. 우리 민족이 얼마나 거짓말을 잘 했는가는 1653년 우리 나라에 표착하여 상당기간 머물렀던 네덜란드 선원 하멜의 눈에도 뜨일 정도였다. 그는 "조선 사람들은 매우 도둑질을 잘하며 속이거나 거짓말도 잘한다. 그래서 조선 사람들은 신뢰할 수가 없다.") H.하멜, 『하멜표류기』, (신복룡 역주), 집문당, 1999, 58쪽. 고 그의 표류기에 썼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문화와 사고방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무속신앙과 유교 때문일 것이다. 그 두 종교가 우리의 교육열을 높이고 예술적 감수성을 날카롭게 한 것 등 우리 문화에 끼친 긍정적인 요소들을 결코 무시해선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종교들은 한국인의 도덕성에는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끼쳤다. 무속종교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무시하고 개인의 행·불행을 모두 운수소관(運數所關)으로 보도록 하여 도덕성 제고에는 아무 공헌도 하지 못했고, 유교는 인격적인 신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인간의 속마음을 감시하는 "내면적 경찰"("police within")을 제거하였다. 불행하게도 한국에 전래된 불교와 기독교도 상당할 정도로 무속화되어 그들 고등종교가 행사할 수 있는 도덕적 영향력을 우리 나라에서는 지금 거의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인격신을 인정한 사회의 "죄의식의 문화"(guilt culture) 대신 우리 나라에서는 "부끄러움의 문화" (shame culture)가 지배적이 되었으며, 사실, 진실, 진리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목, 눈치, 평판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이런 문화적 배경이 우리를 상대적으로 부정직하게 만든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사실 거짓, 거짓말 그 자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이 나쁘다는 의식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어려운 상황 때문에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큰 잘못이란 사실을 개인이나 사회가 강하게 인식한다면 언젠가는 부정직이 고쳐질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그런 의식이 강하지 못하면 개선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전 국민 앞에 한 약속을 어긴 사람이 정부의 고위직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고, 공공연하게 거짓말한 사람이 선거에서 어렵지 않게 당선되고 있다. 교사들에게 거짓 공문서를 요구하는 교육부와 교육청, 교수들에게 실행하지도 않을 거짓 항목과 내용을 쓰지 않으면 연구비를 받을 수 없게 되어있는 경직된 연구비 신청제도 등 정부의 제도들조차 거짓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언론의 허위보도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그렇게 했을 때 받는 불이익도 별로 없다. 부정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고위층 인사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처음부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사람은 없었고, 그 때문에 형량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처음부터 시인한 사람에게 형량을 줄여주는 서양의 재판과는 많이 다르다.

지도층만 부정직한 것이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부정직의 악에 대해서 무감각하다. 공보처가 1996년에 발간한 《한국인의 의식. 가치관 조사》에는 정직이란 가치는 아예 조사 대상으로 선정되지도 않았고, 정직과 가장 가까운 항목인 "청렴성"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5.3%가 중요하다고 대답하여 "예의. 공손" (89.5%)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취급한다.) 공보처, 《한국인의 의식. 가치관 조사》 자료편, 1996, 319, 317쪽 참조. 2001년 5월 서울 시내 중·고등학생 5천113명을 대상으로 봉사활동과 관련해 설문 조사한 결과 45%가 확인서에 기재된 시간과 실제 봉사시간이 차이가 있다고 응답했고, 그것이 나쁘다는 사람은 37.6%인 반면 39.7%는 "다수 또는 소수가 그러므로 괜찮다"고 했다 한다.) 2001년 6월 19일자, 《조선일보》.

이런 결과는 한국 교육의 실패에 기인한다. 그 동안 한국 부모들의 도에 지나친 교육열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과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제일 높은 대학진학률을 기록하였고, 그 덕으로 경제와 기술이 장족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한국인의 교육은 파행적으로 이루어졌다. 지식 교육에 모든 정성을 다 쏟은 반면 인간을 인간답게 키우는 인성교육에는 완전히 실패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자들조차 정직성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교육자가 쓴 도산의 전기에는 도산이 어릴 때 엄격하기로 소문난 할아버지가 붙잡으러 온다고 원두막 주인을 속이고 참외밭 덩굴 속에 숨어 남의 참외를 훔쳐먹은 이야기, 서당에서 공부하지 않는 아이를 멍석에 숨겨 훈장을 속인 이야기, 그리고 아주머니 집에 가고 싶어서 이웃에게 거짓말을 부탁한 이야기 등을 기록하면서 소년 안창호가 지혜가 많았고 한번 마음먹은 것은 기어코 실행하는 의지가 강한 어린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Byung-il Kim, Korean American Pioneer Dosan - A Biography of Dosan Chang-ho Ahn- . translated and edited by The Pacific Institute for Peacemaking, 1995, pp. 2-7. 그러나 안성결 여사는 안창호의 거짓말과 도둑질을 안 그의 어머니가 "부지깽이가 동강이 나도록" 때리며 훈계하였으며, 도산은 다시는 남의 것 훔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그 때 이후로 '죽어도 거짓이 없어라'는 도산의 천성이 되어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안성결,『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44쪽.

정직을 그렇게 강조한 도산의 어린 시절을 소개하면서 그의 지혜("Clever Boy")와 그의 굳은 의지만 강조할 뿐 그의 거짓말은 전혀 문제삼지 않는 저자의 의식은 정직성에 둔감한 평균적 한국인을 대변한다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도산을 외국인에게 소개하기 위하여 이 책을 영어로 번역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부분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번역자나 출판기관의 의식수준도 마찬가지다. 도산의 외침이 얼마나 메아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4. 정직의 목적과 확산

정직을 포함한 모든 도덕적 덕목은 그 자체로 옳다는 생각은 오늘날 별로 설득력이 없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명령, 공자님 말씀, 인간의 마땅한 도리 등으로 도덕적 덕목을 정당화하였고, 그런 권위를 인정하던 시대에는 그런 권위를 근거로 하여 옳은 덕목은 그 자체로 옳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권위가 다 세속화된 오늘날 그런 것을 근거로 하여 도덕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하나님, 인간의 마땅한 도리가 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적어도 도산은 정직이 그 자체로 옳기 때문에 우리가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지 않다. 거짓말은 그 자체로 나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 독일 철학자 Kant와 진실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진실해야 한다는 프랑스의 철학자 Benjamin Constant의 논란은 유명하다) David Ross, Kant's Ethical Theory, Oxford, Clarendon Press, 1962, pp.31-32 . 도산은 Constant 편이었다 할 수 있다. 정직을 그렇게 강조했지만, 독립운동을 위하여 필요할 때는 경찰을 속이기도 한 것 같다.) 주요한은 도산과 같이 중국 남경에 가서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는 반드시 "오늘 이야기 한 것은 동지 아무의 입원비를 장만하는 문제였다"고 말을 맞추었다고 했다(『전서』, 149쪽). 윤리 이론으로 말하자면 그는 의무주의자(Deontologist)가 아니라 목적론자(Teleologist) 혹은 결과론자(Consequentialist)였다.

도산이 정직을 강조한 것은 매우 현실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즉 그렇게 해야 사람들의 신용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고, 신용을 얻는 것이 곧 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없으면 힘을 합칠 수 없기 때문이다. 흥사단 입단 질문에 "…누구나 제 양심에 물어 보면 거즛이 불가한 줄을 알지오. 그렇지마는 거즛이 있어서 안 될 이유는 무엇이오?" 하는 것이 있다.) 『전집』제12권, 294쪽. 양심에 비추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거즛 말을 하거나 남을 속이면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지오"라는 답변을) 『전집』제12권, 295쪽. 기어코 받아내려 한 것이다. 도산은 이 자명한 사실로 그 때 나라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였고, 그것에 기초해서 그의 애국운동을 펼쳐나갔다. "속이거나 거짓말하지 아니하고 진실하여 신용의 자본을 동맹 저축하옵세다."라고 외쳤고, "자력을 발휘하는 길은, 첫째로 국민 각개가 분발 수양하여 윤리적으로 거짓 없고 참된 인격과 기술적으로 지식이나 기능을 적어도 한 가지씩 가진 유능한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한 개인들이 뭉쳐서 신의를 지키고 협동할 줄 알아 공고한 단결을 이루어야 한다.") 『전서』, 97-98쪽. "서로 신용이 없으면 방침이 서로 같더라도 합동될 수가 없고, 서로 신용이 없으면 공통한 목적과 방법을 세우기부터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전서』, 32쪽. 올바로 지적하였다. "허위로 쇠한 국세를 회복하는 길은 오직 성실에 있을 뿐이다. 제자(諸子)가 만인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됨으로 우리 민족이 만국에 신뢰받는 민족이 되게 하라. 이 밖에 우리 나라를 갱생하고 영광 나게 할 것이 없다"고 학생들에게 역설하였다.) 이광수 『도산 안창호』 상권 3장, 『전서』, 107쪽에서 재인용.

도산은 상항 거주 한국인들이 미국인들의 신임을 얻게 하기 위해 1년간 온갖 수고를 다 겪으면서 솔선수범하고 지도하여 마침내 성공하였으며,) 『전서』, 68-71쪽. "미국의 과수원에서 귤 한 개를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라고 교포들을 설득하여 마침내 미국 과수원 회사 사장의 인정을 받기도 하였다.) 『전서』, 73-74쪽. 정직과 성실이 결과적으로 속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도산은 믿었고 가르쳤고 몸소 실천하여 증명하였다.

도산이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의 직책으로 지방을 순회하는데 여비가 모자란 일이 있었다. 국민회 간부 하나가 "여기 한국인 목사님이 가진 신분증명서를 빌렸으니, 이것을 가지고 목사 행세를 하면 기차 삯을 할인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때 도산은 "내가 이것을 사용하다가 들키면 나의 신용도 떨어지고 또 그 목사의 신용도 떨어질 것이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요. 경비가 모자라면 다시 들어가 며칠 있으면서 돈을 조금 더 장만해 가지고 길을 떠나도록 합시다."하며 되돌아 왔다 한다.) 『전서』, 167쪽.

속이는 것 그 자체가 나쁘기 때문이기보다는 그렇게 하면 신용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속이는 것보다 더 큰 손해를 본다는 계산이 들어있다. 이것은 일종의 합리적 이기주의라 할 수 있다. 거짓은 그 자체로도 나쁘거니와, 결과적으로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어리석은 전략이란 것이다. 그것은 개인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집단, 특히 국가에게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우리 국가와 민족이 이렇게 쇠망한 근본적 이유가 진실한 국민적 자각, 민족적 자각, 역사적 자각, 사회적 자각을 못 가진 데 있다. 배일운동이 있기는 하지만, 그 중에는 그냥 비분강개에 그치는 수가 많고 믿을만한 책임심이 결여되어 있다. … 현대의 동양은 서양보다 아주 쇠퇴하여 있다. 그 생활은 암담하고 그 문화는 정체되어 우매와 빈곤에 빠져있다. 동양에 있어서도 우리 한국이 가장 심하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손쉽게 말하면 진실한 인생관이 확립되지 못한 것이다. … 우리 한국에서도 임진왜란 이후는 진실성이 더욱 없었는데 이것은 동양에서도 가장 심한 역사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위대한 창조력을 가졌던 동양이 근대에 와서는 왜 침체. 몰락되었을까. 그의 근본은 진실성이 결여된 까닭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 진실성의 대소와 심천의 차이가 현대 문화의 선진성과 후진성을 척도하게 되는 것이다.") 최남선이 회고한 도산의 말, 『전서』, 501-502쪽.

그러므로 우선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한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고, 선진국들이 선진국이 된 것은 이런 합리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정직이 과연 "장기적으로" 혹은 "궁극적으로" 이익을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직은 반드시 이익을 가져다주고 거짓은 반드시 해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거짓말을 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이것을 윤리학에서는 "확신의 문제"(assurance problem)라고 한다. 역사와 사회에 "보이지 않는 손"(Adam Smith)이 작용하고 "세계역사는 세계의 재판"(Hegel)이기 때문에 신상필벌(信賞必罰)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확신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정직은 반드시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신비스러운 초경험적 원칙들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회의 법과 도덕적 질서의 정도에 따라 그 확신의 정도가 달라진다. 질서가 문란한 사회에서는 정직은 반드시 보상을 받을 것이란 확신이 약할 것이고, 질서가 엄격하게 잡혀있는 사회에서는 그런 확신이 강해질 것이다.

그런데 한 사회의 도덕적, 법적 질서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하여 결정되겠지만, 법 자체의 공정성, 법 집행과 법에 의한 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법, 법의 집행, 법의 심판도 그 사회의 도덕적 수준과 무관하지 않으므로,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 확신을 강화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여기서 일종의 순환작용이 일어남을 알 수 있다. 즉 정직하면 보상을 받는다는 개인들의 확신이 강하면 강할수록 정직하게 행동할 것이고, 정직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직이 보상을 받으리라는 확신이 강해지는 것이다. 역으로 정직보다는 거짓이 더 큰 이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럴수록 그 사회는 그만큼 무질서해질 것이고 그것은 다시 정직에 대한 확신을 약화시켜 악순환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악순환을 누가 깰 수 있겠는가? 도산은 비록 이 문제를 논리적으로 정리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든지 먼저 시작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함을 매우 강조하였다. "나라를 사랑하느냐, 그렇거든 네가 먼저 건전 인격이 되어라 하는 것은 그가 입버릇처럼 청년들에게 가르친 것이다."라고 주요한은 전한다.) 『전서』, 170쪽. 그리고 그런 사람이 하나라도 더 많으면 그런 사람이 더 많이 생겨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확신을 그만큼 더 키운다는 것이다. 이광수는 회고하기를 "도산은 인격수련에 대해서도 이 「본보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중에 거즛없는 사람이 생기면 거즛 없는 많은 사람이 생길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럼으로 도산은 항상 말하기를 '나 하나를 건전인격을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을 건전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하였다.) 『전집』제12권, 99쪽. 이런 생각은 사회 윤리학적으로 매우 타당성이 있으며 매우 현대적이고,) 도산은 요즘 윤리학에서 점점 중요시되는 "덕의 윤리"(ethics of virtue)의 중요성을 체득하였으며, 그 윤리이론이 강조하는 바와 같이 윤리적 덕은 원칙에 따른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되는 연습과 수련을 통해서 습관화되어야 함을 알았다. "그는 도덕이 예의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예의는 각개인의 반복실행에 의하는 습관형성력이 아니면 자리잡힐 수 없는 줄을 알았다" (『전집』제12권, 236쪽). 분명한 논리와 자신의 모범을 통하여 어느 누구도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강력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 "남더러 합하지 않는다, 편당만 짓고 싸움만 한다고 원망하고 꾸짖는 그 사람들만 다 모이어서 합동하더라도 적어도 몇 백만 명은 되리라.") 『전서』, 32쪽. 오늘 한국 정치인, 한국의 지도자들, 교포사회가 모두 귀담아 들어야 할 경고가 아닌가 한다.

맺는 말

정직은 모든 도덕의 기본이며 개인과 공동체가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 어떤 개인이나 나라도 정직하지 않고 강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영국 사람이 우리 모양으로 거즛이 많을진댄 영국도 우리 나라 모양으로 망하였을 것이오. 거즛 많은 국민으로 아니 망하는 국민이 어듸 있으며, 거즛 많은 채 부흥한 국민이 어듸 있소?") 『전집』제12권, 243쪽. 다른 분야에서 아무리 뛰어나도 정직하지 못하면 문명국이 될 수 없고, 정직하지 못한 민족은 결코 존경을 받지 못할 것이다. 정직은 여러 가지 덕목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모든 덕목의 기본이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심지어 불쌍한 사람을 잘 도와주어도 정직하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이 위선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과 사회가 그렇게 정직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우리의 치명적인 약점이며, 바로 그 때문에 도산의 가르침과 모범은 그 누구의 무엇보다 더 중요한 민족적 자원이다. 우리는 그 자원을 최대한으로 개발하고 이용해야 그가 꿈꾼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 오늘날 정직하지 못하거나, 정직하기로 결심하지 아니하고는 아무도 도산을 기릴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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